보조 운동 기구

수련 지도에 유익한 도움을 주시는 사범님 한 분이 오셨다.

오랜만에 들르신 터라 수련장에 이러저러한 보조 기구들이 있는 것을 보시며 깜짝 놀라시는 눈치다. 연세가 많이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놀란 얼굴이 젊은 처자처럼 고우시다. 저것들이 다 무어냐고 물으시기에 용도를 하나하나 신이 나서 설명해 드렸다. 그랬더니 또 부질없는 짓을 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머리는 참 좋네.” “그런데 아직도 머릴 가지고 수련을 하네....” 한마디 뼈 있는 말씀을 건네신다.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니고 심심찮게 듣던 소리라, 그냥 웃으며 흘렸다.

사범님이 가시고 난 뒤, 간신히 버텼던 항문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렵고 아프기 시작했다. 서너 달 전만 해도 말끔히 완쾌되었던 소양증이 재발되어 삼주 째 나를 괴롭히고 있다. 몇 십 년을 치질과 소양증 등... 항문 때문에 고생을 했다. 헌데 재발될 줄도 모르고 작년에 수련 도우들을 만나 완쾌를 자랑까지 했으니... 느긋하지 못한 빠른 성미 때문에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그동안 좋았던 컨디션과 혈색이 요즈음 들어 안 좋아진 것도 모두 다 항문이 풀린 까닭인 듯싶었다. 사범님은 가시기 전에 항문 이야기를 듣고 “힘을 주어서 수련을 하니까 그렇지.” 하면서 “힘 좀 빼셔... 힘을.... 힘이 들어가니까 약한 부분부터 터지잖아.“...

가시면서 던지신 이 한 마디가 가슴팍에 꽂히는 듯 했다.

응급조치를 취하고 텅 빈 수련원에서 가슴에 꽂힌 사범님의 지적을 생각하며 짐볼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선이 짐볼과 보조 운동기구들에 고정이 되었다. 순간, “아, 저것들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보조기구들은 회원님들의 몸을 쉽게 풀어 들이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구입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힘을 덜 들이고 운동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목적으로, 시간 없고 게으른, 급한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것들이다. 무언가 수련에 효과를 봐야 그만두지 않고 수련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런 도구들 말고도 몸 풀기 위한 동작들을 개발하였는데(ㅎㅎ) 이 모두가 같은 목적을 위해 고안되었다.

빠른 시일 내에 효과를 보고자 하는 데에는 언제나 성급함과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내 밑에 깔려 있는 짐볼의 바람구멍부터 열었다.
하나 둘 보조기구를 정리면서 내가 건축업을 하지 않은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건축업자가 되어 한강 다리를 시공했다면, 기일단축을 위해 제 2의 성수대교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본시 마음도, 뜻도 없이 흐르는 것이나, 한 치의 어긋남도 빈틈도 없는 풍류(風流)의 이치를 터득하지 못한 체 풍류도를 논하고 국선도를 운운하였으니....

아, 이 부끄러움을 어이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