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전도자(傳道者)  

 오래 전 일이다.

 아침 수련을 하러 가는데 애들 엄마가 오늘 좀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한다. 저녁에 집에서 교회 지역 모임을 갖는데 내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전도하기 위해 이분들이 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교인들과 대면하는 게 싫어서 늦은 시간까지 버티다가 밤 10시에 귀가를 했다. 그런데 내가 늦게 올 것을 예상했던지 이분들은 그 때까지 안방에서 차분히 차를 들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스러웠고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하고 공손하게 앉았는데, 권사님 한분이 내 얼굴이 참 좋아졌다면서 국선도가 무엇인데 그렇게 푹 빠졌냐고 궁금해 한다. 잘 됐다 싶어 7~8명 되는 분들의 자세를 살피면서 수련의 효과를 실감나게 설명 드렸다. 심방 모임이기에 간단히 설명 드리려는데 오신 분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면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계속 하시는 바람에 나 혼자 떠들고 정작 날 전도하러 오신 분들은 경청하는 꼴이 되었다.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전도(국선도)를 당하고 간다.”는 어느 분 말에 모두가 한 바탕 웃었다. 다음 날 이분들 가운데 다섯 분이 국선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후로부터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도사, 국선도 전도사가 되었다. 전도사는 원래 하느님의 말씀 즉 복음의 전파하는 사람으로 그 지위가 목사 앞에 있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를 도와 전도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전도사(傳道師)는 글자 그대로 “道를 전하는 스승”이다. 기독교와는 별로 매치가 되지 않는 이름으로 보인다. 차라리 도가나 유가의 도사나 유생, 산중 수도를 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나는 국선도 전도사로 자부심을 가지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범이 되었다.

수련을 하다 그만 두었다가 다시 하기를 반복하였다. 직장 가까운 곳에서, 집 가까운 곳에서 수련을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흰 띠만 5번 매면서 15년 세월을 수련하였다. 참으로 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했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잘 못 알고 엉터리로 전도사 노릇을 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수련에 관한 책들도 많이 사서 보았고 인터넷을 뒤져 국선도 수련에 관한 자료들을 많이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이 책 저 책을 두서없이 접하다 보니 오히려 그게 수련에 큰 방해가 됨을 후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부터는 모든 책을 다 파(破)하고, 청산선사님의 책만 읽게 되었다.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수련의 지침서가 청산선사님의 "국선도 1, 2, 3"과 "삶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강연 초록과 신문지상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었다. 나는 선사님의 글을 읽다가 우연히 자신은 “스승의 명을 받아 국선도를 세상에 전하러 왔다.”는 글귀를 접하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적이 있다. 그것은 내 스스로 국선도 전도사(傳道師)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정작 전도사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진정한 傳道師는 mission을 받고 하산하신 청산 선사님이셨던 것이다. 선사님께서는 자신이 배운 민족의 심신수련법을 전하기 위해 하산을 하신 것이었다.

 “전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 구분을 명확히 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으나 굳이 구분 한다면 먼저 전하는 것은 내가 듣고 배운 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제 3자가 나를 통해서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즉 돕는 이의 역할에 중점이 있는 것이며, 반면에 가르치는 것은 내가 배우고 익혀 소화한 내용을 내 방식대로 상대를 이끌어 주는 일, 나의 것을 알려주고 깨우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내가 배운 내용 플러스, 나의 노하우가 합한 것이 “가르치는 것”이다.

 청산 선사님은 그러나 스스로를 “道를 전하고 가는 사람”으로 자신의 임무를 한정시키셨다.그러므로 그는 “내가 전하는 도법을 변형시키지 말라.”는 말씀을 분명하게 하셨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청산 선사님이야말로 진정한 傳道師, “道를 전하는 스승”이라는 호칭을 들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아니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내가 자칭 傳道師라는 말을 스스로 쓸 수 있겠는가!

 “변형시키지 말라.”는 도법을 이리저리 고치고 손질하여 국선도 수련의 기본 원리를 훼손시키는 이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다. 하나 같이 부끄러움 없이 국선도 스승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지도자로서 낮추고 비워야 할 자신을 더 드러내고 더 높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게는 이들 모두가 명예에 마음을 쓰고 명칭에 자존심을 걸고 사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스승을 욕되게 하고 자신을 황폐화시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은혜를 받았으면 밑거름이 되는 심정으로 더욱 더 소리 없이 낮아져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때늦게나마 내 자신 국선도 전도사가 분에 넘치는 호칭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게 어울리는 명칭을 찾았다.

그것이 다름 아닌 국선도 傳導者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게 버거운 명칭임에 틀림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