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과 사부(師父)

       사범과 사부는 다르다.

       이 두 개념의 관계는 선생과 스승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 단어들은 모두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공통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마음 자세로” 가르치고 보여주는가에 따라 말의 쓰임새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러한 용어의 의미 구분은 지금보다는 옛날에 더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요즈음엔 우리가 쓰고 있는 적지 않은 어휘들이 인플레로 그 가치가 떨어져버린 돈처럼 본의미가 퇴색되어 사용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훈장과 선생님은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동내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동네사람 모두가 깍듯한 예절을 갖추었다. 훈장과 선생님은 생활 속에서 삶의 전형(典型)을 몸으로 보이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모범이 되었고 사회에서는 교사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처신을 함으로서 존경을 받았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줌으로서 가르침을 베푼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조금만 바꾸면, “사범은 많으나 사부는 없다.”가 된다.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요즈음 선생님들은 입시를 위해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전문직업인에 불과하다. 진학 시험 점수를 잘 올리는 선생은 유능한 교사가 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무능한 선생이 된다. 존경의 척도가 시험점수 향상의 여부에 좌우되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많은 단체들이 있다. 모두가 도(道)와 관련된 수련단체들이다. 남 이야기 하는 것은 좀 주제 넘는 일이지만, 이른바 道를 수련한다는 사범들 가운데 모르긴 해도 대다수는 단순한 건강증진을 위한 체육지도 교사 또는 메달 획들을 위한 지도자로서의 전문직업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도를 닦는 일도 시대상황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르겠다.

        어떻든 타 수련단체는 그렇다고 하고,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국선도는 어떤지 진지하고 묻고 싶다. 나는 국선도가 적어도 타 단체와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수련을 해왔다. 그러나 내가 지금 피부로 느끼고 현실에서 실감하고 있는 국선도는 이들과 큰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국선도가 최상의 수련법임이라는 점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선도는 잡초 속에서 허덕이는 난(蘭)처럼 그 진가를 드러내지 못한 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정 목숨 내놓고 진지하게 수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자가 단 몇 사람이라도 있다면 국선도는 사분오열 되어 허덕이는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체지체능의 수련법인 국선도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솔선수범을 하며, 인격으로 마음을 움직여 감화시키고, 올바른 행동으로 몸소 가르치며 진한 사랑으로 감동시키고 이끌어 주는 그러한 사부(師父)를 난 간절히 만나보고 싶다.

        이러한 나의 오만한 생각이 내 식견과 안목의 비좁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가르침, 교육이란 본래 보여주는 것이다. 동물들도 인간과 같이 새끼를 가르침에 있어서 몸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직접 보고 듣지 않은 것은 행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창의적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창의적이란 말도 따지고 보면 지식사회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기존의 보고 들은 것을 각도를 달리하여 조합한 것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국선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러한 청산 선사님의 시범과 무관하지 않다. 그 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수련하였고 누구나 수련을 하면 행할 수 있음을 말뿐만이 아니고 몸소 보여주었다. 청산 선사님이 일반 사범과 달리 모든 국선도인의 사부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사님은 언제나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말씀보다는 “배운 것을 그대로 전하고 갈뿐”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셨던 것으로 보인다. 이 얼마나 겸손한 자세인가! 그러나 선사님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은 감히 선사님과 동일한 선사 호칭을 쓰면서 부끄러움을 못 느끼고 있다. 그리고 허망한 명예를 쫒으며 주도권 다툼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스승을 두 번 욕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국선도 지도자들을 평가절하 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다. 하지만 국선도가 이 땅에 진정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청산 선사님의 하산하신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른바 국선도 지도자들 모두가 한 번은 크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도자 자리에서 내려와 스승과 사부 노릇 그만하고 하얀 띠를 맸던 초심으로 돌아가 백의종군 솔선수범 하고, 수련복 입고 수련하는 모습을 몸소 보임으로써 청산 사부에게 은혜를 갚고 진정한 국선도 지도자의 하심(下心)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2009년 6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