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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점을 달라. 그러면 지구를 움직이리라.”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말이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학문의 출발점으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근거”를 찾고자 애를 써왔다. 인식이론이 발달하지 않았던 초기 그리스 고대 철학자들은 그것을 물, 불, 온냉건습, 원자, 로고스 등의 물질적인 것에서 찾았다. 그러나 근대철학의 선구자였던 데카르트는 “사고하는 자신”(cogito)을 그 시발점으로 삼았다. “생각하는 내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사고하는 나”, “의심하는 나”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것, ‘아르키메데스의 일점’으로 서양의 근대 인식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 서양인들은 인간의 사고, 즉 이성에 가장 큰 가치와 의미를 두었다. 플라톤은 인간을 지배하는 중심적인 힘을 이성으로 보았다. 그는 우리의 신체를 기능적 측면에서 머리, 가슴, 배 이렇게 삼등분하였다. 머리는 육체를 지배하는 이성(logistikon)이 있는 곳이며, 이성은 죽은 후에도 영원히 남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슴은 기개(thymoides)적인 부분으로 의협심, 혈기가 발동하는 곳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 부분(epithymitikon)은 생식과 생산에 관계한다. 머리 부분인 이성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부분은 육체가 있는 한에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 우리의 영혼 또한 신체의 세 부분에 상응하는 구조(이성, 기개, 욕망)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도 이성이 중심 역할을 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심리학자인 프로이드는 플라톤의 영혼 3분설처럼 성격 형성의 세 요소를 말하고 있다. 원본능(Id)과 초자아(Super-ego), 그리고 에고(Ego)가 그것이다. 이드는 쾌락의 원리로서 리비도(Libido : 성적본능)와 타나토스(Thanatos : 죽음의 본능)를, 수퍼에고는 도덕의 원리로서 양심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말한다. 그리고 에고는 ‘현실의 원리’(Reality principle)로서 이드와 수퍼에고를 잘 조정 관리하여 현실적으로 삶의 균형을 잡고 살아가는 능력을 말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인 이드는 교육과 경험, 환경에 의해 단련되고 훈련돼 자신의 본능을 억제하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에고가 형성되고, 이 에고를 더욱 감시하는 수퍼에고가 형성돼 한 개인의 인격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서양적 전통은 대체적으로 이렇게 머리가 중심이며, 영혼 속에 들어 있는 이성적 부분이 불변하는 인간 본성이 된다. 데카르트의 경우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나’가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듯이 두뇌로 일컬어지는 이성은 언제나 삶의 이끌어 나가는 주도적인 힘이었다. 프로이드의 경우에 있어서도 에고는 비록 플라톤처럼 같이 초월적 이성의 의미는 아니지만, 삶의 다양한 욕구(비합리적 욕구)를 조정, 관리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합리적 이성을 지칭하고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제 속에는 지식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며 근대 서구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교육의 이상이 잘 함축되어 있다. “모든 악은 무지로부터 비롯된다.”는 소크라테스의 철저한 주지주의적인 철학적 신념이 베이컨을 거쳐 내려오면서 서구적 사고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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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이처럼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아르키메데스적 일점이라면, 국선도에 있어서의 일점은 천지만물의 시원이자 유일 실체인 氣로서 사람의 하복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氣밭, 즉 단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몸의 무게 중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2) 의식이 집중되는 곳으로, 모든 활동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3) 또한 무심의 자리이며, 본래의 “숨을 쉬는 곳”이다.
4)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며,
5) 모든 힘, 정(精)의 원천으로 생명력을 양생하는 불두덩, 아궁이와 같다.
1) 하단전은 오뚝이의 무게 추와 같이 우리 몸통의 균형을 잡아 주는 무게 중심이다. 단전의 위치에 대한 수많은 설명이 있으나(배꼽 아래로 3치, 2치 4푼, 1치 5푼 아래 등등), 그 어떤 것도 적절하지 않다. 단전 자리는 개인차도 있기에 정확히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전은 지적 이해의 대상이 아닌, 심신이 유연해진 상태에서 느끼게 되는 지각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체의 긴장을 모두 풀고, 허리를 바르게 세운 후 의식을 하복부 쪽으로 내리게 될 때에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體知體能) 몸의 중심이다. 단전은 또한 팽이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중심을 잡는 팽이의 아래 축과 같다. 이 중심은 상하좌우의 중심이 되는 지점을 말한다. 이곳은 다른 장기처럼 구체적 형태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고 오직 생명이 있는 동안 느낄 수 있을 뿐이다.
2) 氣는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意識이 가는 곳에 氣가 간다.’라는 말처럼, 의식의 상태에 따라, 의식의 움직임에 따라서 기는 움직인다. 의식이 없으면 기절하게 되며, 의식이 분산될 경우에는 생각은 산만해지고, 몸은 기의 흐름이 흐트러짐으로 해서 미치게 되거나 생기가 없게 된다. 단전은 氣가 응축되어 모여 있는 기의 밭이니, 의식이 머무는 집이며, 산란함이 사라졌을 때에 마음과 정신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초의 몸통에 해당되는 하단전은 생명 에너지의 근원으로 몸의 다른 부분들은 이 하단전의 견실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따라서 모든 활동의 중심은 하단전에 두고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연후에 중단전, 상단전이 차츰 발달을 하게 되고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3) 몸과 마음의 중심인 하단전은 선악, 시비를 가리는 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분별의식이 없는 무심의 자리이다. 우리 몸의 경락이 처음 생겨나는 곳(모든 경락의 시원)으로서, 새 생명이 잉태할 때에 처음 형성되는 곳이기에 생명의 시원지이다. 그리고 간난 아이들이 세상에 처음 나와 호흡을 하게 되는 곳, 즉 우주의 생명 에너지인 기를 받아들이는 태식호흡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숨을 들이 마시는 곳이 아니라, 숨을 쉬는 곳이다.” "숨을 쉰다"는 말은 "숨을 내쉰다"의 준말이다. 그러므로 氣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비움으로서 자연스럽게 氣가 들어오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 말이 그 말인 듯하지만(tautology), 차이가 있다. 채우고자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쉼으로서, 그 비워진 공간이 저절로 채워지게 한다는 의미다. 비어있는 잔에는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나, 채우려는 욕심이 많으면, 비워지는 게 없으니 더 들어 올 수 있는 것도 한정이 된다. 그래서 썩기 쉽고 그릇을 오염시키게 되는 이치와 같다. 따라서 단전호흡은 언제나 그 순서가 먼저 내려놓고 비우면서, 즉 쉬면서 채워지도록 해야 하며, 채우면 비워야 한다. 버리면 버리는 대로 들어오지만, 간직하면 간직할수록 더 들어 올 수가 없게 되니, 모름지기 숨은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고 쉬는 것이다.
4) 이곳은 또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다. 우리의 몸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머리는 天이고 다리는 地, 몸통은 人이 된다. 따라서 하단전은 天氣와 地氣 즉 陽氣(양기)와 淫氣(음기), 火氣(화기)와 水氣(수기)가 어울리는 곳이다. 사람은 호흡과 음식물을 통해서 생명력을 얻는다. 즉 대기 속의 天氣와 섭생을 통한 地氣를 얻어 정(精)을 충만하게 하고 원기를 충실하게 한다. 지기(地氣)와 천기(天氣)가 균형을 유지할 때 다시 말해서 음과 양의 기가 균형을 유지하고 수화가 교제되어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작용이 될 때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게 된다. 지기(地氣)는 지나친 편식이나 육식, 과도한 식탐을 갖지 않는다면, 사람에 따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호흡으로 얻어지는 천기(天氣)는 다르다. 마음과 정신, 호흡 상태에 따라 크게 다르나. 정심을 가지고 바른 호흡을 할 때에는 자연의 기운이 들어오는 통로가 열리게 되나,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맑은 우주의 기운(淸氣)이 들어오지 못한다. 청기가 들어올 때에 단전은 빛을 발하기 시작하여 우리 몸의 미세한 부분까지, 60조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빠짐없이 전달됩니다. 이렇게 차고 넘쳐서 온 세상에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하단전은 하늘과 땅이 소통하고, 두 기운이 만나는 中의 자리(밝돌터, 돌단자리)인 것이다.
5) 하단전은 정(精)의 원천으로 생명력을 북돋우는 불두덩이다. 精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으로 생명력을 의미한다. 精이 약하면 생명력이 약하여 매사에 의욕이 없고 만병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에 精이 충만하면 왕성한 활동력을 지니게 되어 불굴의 의지와 의욕을 갖게 되며,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정은 음식물을 통해 얻는 지기와 호흡을 통해 얻는 천기로 하단전에서 만들어진다. 하단전은 기를 양성하는 그릇으로서 이곳에서 精을 만들게 되면, 열이 나오게 된다. 그 열을 단열이라고 하며, 그 열이 식지 않는 동안 우리는 살아있게 된다. 그러나 생명이 다하게 되면 단열부터 식게 되는 법이다. 따라서 하단전은 생명력을 양생하는 가마솥(鼎)과 같고 불을 담는 화로(火爐)와 같다. 이러한 하단전이 약하면 그만큼 심신의 건강은 허약하며, 반면에 강하면 활력과 기운이 넘치게 된다. 하단전은 이렇게 생명의 핵, 중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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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필자는 서양인들과 국선도인이 생각하는 아르키메데스적 일점에 대해 간단한 정리를 해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두고 고심을 하였다.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소크라테스적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질문 또한 막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출발하는 지점은 전자의 물음보다는 더 구체적일 수 있다. 그 출발은 살아남는 데에서부터, 즉 생존하기 위한 길을 찾는 데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먼저 서양의 경우를 살펴본다면,
서양의 사상가들은 그 출발점을 지식을 확보하는 데에서 찾았다. 무언가 알아야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삶과 죽음, 자연의 신비한 현상이나 재앙이 왜 일어나는지를 몰랐다. 그래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신화를 썼다. 그러나 맹목적인 신화를 믿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그들은 이성의 힘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 힘을 이용하여 지식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모든 것이 지식에 달려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삶의 중심, 진리 탐구의 중심이 되었다. 그들이 발견한 이성은 그 어느 개념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서양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로고스(logos : 언어, 이성, 계산, 비례, 법칙, 논리, 인간의 이성, 우주이성, 질서)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이성은 그들 삶의 중심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처음으로 철학적으로 정립된 이 로고스 개념은 원래 물질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순수한 에테르를 지칭하였다. 이 에테르는 물질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맑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동양식으로 말하면 氣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불의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몸 안에 들어오게 됨으로써 인간은 이성적 사유를 하게 된다. 데모크리토스 그것을 불의 원자로 표현하였다. 인간을 지배하는 누스(이성, 우주이성)는 민첩하게 활동하기 쉬운 가볍고 둥근 구체 모양의 원자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있어서 이성은 인간의 중심이자 우주 자연을 지배하는 이법이었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로고스나 누스는 국선도의 氣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氣가 인간 속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게 될 때에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 진다는 점이나, 우주 자연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원적 실체와 원리가 氣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 氣는 서양문화에서 보는 것처럼 지식에 의해서 이해되거나 체득이 되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지식에 의해 기가 맑아지거나 정신과 육체가 건강해 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 각자에게 내재하고 있는 氣는 정화의 대상이며, 수련과 마음공부에 의해 가꾸어 나가야 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섣부른 지식을 경계하고 끊임없는 마음공부와 심신수양, 그리고 수련을 강조한 까닭이기도 하다. 플라톤 이래 몸과 마음을 두 실체로 보는 서양의 이원론과는 달리 심신을 氣 일원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국선도가 체지체능(體知體能)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전은 이렇듯 우리들 삶의 출발점으로 그것은 아르키메데스적 일점이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국선도인의 답은 이제 명쾌하게 되었다. 단전은 자아의 중심으로서 자기관리의 시발점이자 종점이다. 단전이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가족이 건강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건강할 때, 나라가 살고 인류 사회에 희망이 있게 된다. 단전은 지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일점일 뿐 아니라, 이 우주를 들어 올일 수 있는 작은 한(큰)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