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 베이스켐프”

우리 인사법이 달라지고 있다.서양인들은 ‘좋은 아침, 좋은 오후’와 같이 good을 붙여 인사를 한다. 동네에서 지나치는 사람에게도 lovely day!, beautiful day!라는 산뜻한 인사말을 건네기도 한다. 우리도 요즘엔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조금은 낯설지만 과거에 비하면 기분 좋은 인사말이다. 우리 인사법은 “안녕(아무 탈 없이 편안함)하세요?”처럼,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안부(安否)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서, “밤새 또는 ‘과세’(지난 밤사이) 안녕히 주무셨어요?” “편안하셨지요?” “별고(別故) 없으시지요?” “진지 드셨습니까?” “어디 가세요?” “뭐 하세요?” “어제 어디 갔었어요?” 등, 요즘 세대에는 다소 생소한 ‘생존안부’ 또는 ‘사생활 침해(?)’ 인사법이었다. 

크게 보면 “잘 지내자.”와 “잘 지냈느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지만, 한 마디 인사말 속에서 우리 민족이 지내온 생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굴러다니는 뼈 조각, 머리카락 한 올 속에서 그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요즈음 인사말 가운데 “편히 쉬세요.” “편안한 밤 되세요.”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차분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오랫동안 소심한 가슴을 붙들고 지내왔기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었던 시절 내게 희망을 주었던 성경말씀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장28절)의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피곤하고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이들이여!’(πάντες οί κοπιώντες καί πεφορτισμένοι) ‘다들 여기 내게로 오세요!’(Δεύτε πρός με) ‘내가 또한’(κάγώ) ‘여러분을 쉬게 해줄 것입니다.’(άναπαύσω ύμάς)”  많은 이들이 편히 쉬지 못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까지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왜 사는지 조차 잘 모르고 사는 삶이지만,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듯싶다. 그리스도는 쉴 수 있는 그 길을 보여주심으로 인하여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다.  

마태복음의 ‘쉬게 해 주겠다.’는 의미로 사용된 άναπαύσω라는 동사는 “어떤(힘들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을 그만두게 하다, 그치게 하다, 놓게 하다, 쉬게 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동사의 시제는 현재이나, 제한적 용법으로 쓰인 현재 동사다. 즉 누구나 “쉬게 해 주겠다.”(άναπαύω)는 의미가 아니다. “나를 믿고 찾아오는 모든 피곤하고 짐을 진 자들에 한해서 쉬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고 찾아오지 않는 이들은 제외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자신을 송두리째 조건 없이 품어줄 수 있는 그러한 대상을 마음속에라도 품고 있다면 그는 더 행복할 것 같다. 근심과 걱정, 불안까지 다 맡길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불신은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게 한다. 그래서 믿지 못하면 번민과 일거리가 많아지게 되는 법이다. 그 무게에 비례하여 긴장은 고조되고 피곤이 쌓인다. 일을 하지 않아도 짐을 지고 있으며 마음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긴장은 경직이다. 그것은 다양한 질병의 시달림을 받게 만든다. 이는 몸의 주인인 마음이 그 한도(限度 : 中)를 벗어나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며, 자연과 하늘의 경고인 것이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 편안히 쉴~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딘들 없으리....” 자체로 온전치 못하여 평생을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결여된 존재”인 인간이 불신의 늪에서 어디에 마음을 두고 쉴 수 있을 것인가? 잠 못 이루는 이들에게 밤은 길고,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에게 길은 멀다하지 않았던가!  

내가 지나온 밤과 길 또한 참으로 길고 멀었다. 마음은 언제나 조바심으로 수놓은 오색 옷 입고, 텅 빈 공간 시퍼런 칼 날 위에서 여백 하나 달라고 죽은 귀신 부르는, 앙상한 가지 위의 무당 독수리였다. 오랫동안, 참으로 긴 세월을 나는 콩당콩당 뛰는 가슴을 안고 살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안간 힘을 다하며 살아왔다. 이런 자맥질을 통해 내가 얻은 것 적지 않으나, 안심입명(安心立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림자처럼, 때로는 저승사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조바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 쉴 곳 없는 이런 나에게 작은 쉼터를 제공해 준 것이 다름 아닌 국선도이다. 국선도는 내게 생명수를 얻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나는 방울방울 드물게 떨어지는 생명수를 혀에 적시면서 소생하였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그 감로수를 채집하는 법을 익히며 내 마음의 쉼터를 마련해 가고 있다. 내가 일구어 마신 생명수가 비록 미미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허물어져 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무한한 감사의 염(念)과 희망을 가지고 금과 다이아몬드를 캐는 기분으로 생명수 한 방울 또 한 방울 지금도 캐 모으고 있다.  

물론 국선도가 내 모든 문제를 해소시켜 주었다든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일은 국선도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선도는 다만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그 길을 가장 효율적으로 바르게 들어설 수 있는 길과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저마다 가는 길이 어떠한 길이 되었든 국선도는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길을 떠나는 모든 이들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구도의 베이스켐프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구도의 나침반으로서 보이지 않는 셀퍼의 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타고난 제 명(命)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 검증”(Self-verifiability)이 가능한 수련법을 익히지 못한 때문이며, 국선도라는 셀퍼를 만나 베이스켐프를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선도를 바로 만난 이들에게는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베이스켐프는 인생의 여정에서 언제나 힘들고 지친 심신을 쉬게 하고 새롭게 에너지를 재충전하게 해 주는, 우리들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구축해야 할 베이스켐프, 그것을 국선도에서는 단전이라고 부른다. 단전이 약하면 정상등정은 불가능하다. 베이스켐프 없이 긴 여정을 등반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건은 올바른 베이스켐프의 구축에 있다. 베이스켐프를 정상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 쉴 수 있어야” 한다. 전적으로 “쉬는 일”에 달려 있다. 모든 짐들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려놓음, 즉 쉼을 통해서만이 마음은 비워지고 낮아지는 것이며 진정한 쉼터는 비운만큼 넓어지고, 낮아지는 만큼 실(實)해져서 천수를 누라는 숨(생명)을 제대로 쉴 수가 있게 된다.  

“마음 기댈 곳”, “마음 쉴 곳”이 없는 이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자신만의 소중한 보물, “단전 베이스켐프”가 있음을 알려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