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의 두 가지 길

고교시절 나의 영웅은 헤르만헷세였다.
그는 지금도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영웅이자 스승이다. 처음 그의 책을 접하던 때부터 나는 작품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삶을 송두리째 던져 그렇게 한 번 살아 보고 싶었다. 특히『싯다르타』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방황 많던 10대, 나의 우상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싯다르타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날까지 그의 사무친 구도행각을 잊어 본 적이 없다. 헤르만헷세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애정 때문이었을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의 손녀딸과 같은 대학에 근무하였고 공동연구를 하는 인연을 갖기도 했다.

바라문의 아들 싯다르타에겐 고빈다라는 친구가 있었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눈매와 고운 목소리를 사랑하였으며 그의 걸음걸이와 예의 바른 행동을 좋아하고 존경하였다. 말하고 행하는 것, 높은 소명감과 불타오르는 구도(求道) 의지..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였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와는 달리 고지식하나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다. 언젠가 싯다르타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그의 몸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된다면, 그는 기꺼이 그의 친구로서, 동반자로서, 하인, 호위병으로서 충실한 충복이 되고자 하였다.

명상과 기도를 하며 사문들 틈에 섞여 3년 동안 여기저기를 수행 하는 동안 그들은 생불로 추앙을 받는 ‘고다마’와 조우를 하게 되었다.

“그의 고요한 얼굴은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아보였으며, 내면을 향하여 그윽한 미소를 흘려보내는 것 같았다. 눈에 띠지 않는 미소를 머금고, 사뿐사뿐, 유유히, 어린 아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고 있었다. 그는 다른 모든 승려들과 마찬가지로 법복을 걸치고, 엄격한 계율에 따라서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의 얼굴과 발걸음, 그리고 조용히 내리깐 눈길, 얌전하게 내려뜨린 손, 또한 손가락들은 모두 하나하나 평화와 완성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무언가를 구하지도 않았고, 모방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결코 시들지 않는 인식과 평화 속에서 부드럽게 숨을 쉬고 있었다.”

고다마 부처의 설법이 끝나자 많은 순례자들이 걸어 나와 그들을 받아주기를 청하고 그의 가르침에 귀의하였다. 수줍음을 타는 고빈다도 걸어 나와 “저도 세존의 가르침에 귀의하겠습니다.”고 말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고다마 부처가 휴식을 위해 자리를 뜨자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 다가가서 함께 귀의할 것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그는 이제 친구와도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것을 알았다. 다음날 아침 고다마 부처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였다.

“세존이시어, 한 순간도 저는 당신에게 의심을 품은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부처님이라는 것, 당신은 바라문의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셨다는 것을 저는 한 순간도 의심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어, 당신은 당신이 깨달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로 가르쳐주실 수가 없습니다. 도를 깨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명백하고 존귀한 가르침이라도 빠뜨리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유일하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편력의 길을 계속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사문이여, 그대가 생각한 목표에 이르길 바라오.”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제각기 서로 다른 구도의 길을 선택하였다.

싯다르타는 홀로 가는 길을 택하였고, 고빈다는 이끌어 주는 길을 택했다. 전자는 좁은 고난의 길을, 후자는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큰길을 택한 것이다. 여기에서 어느 길이 올바른 선택이었는가를 따지는 문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정해져 있거나 자동차 도로처럼 가시적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고, 저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을 찾거나 만들어서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느 길이 되었든지 진리의 길은 이끌려 가는 길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스스로 결단하며 암중모색을 하며 찾아야 하는 길이다. 아무리 설명과 설득을 잘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남에게 전해주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흔한 예로 밥맛을 모르는 사람에게 밥맛을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어떻게 알아듣게 말 해 줄 수가 있을 것인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자신이 체득한 내용과 방식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짙다. 다른 이들이 터득한 노하우를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싯다르타는 고빈다와 달리 이 점을 고다마 부처에게 강조를 하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상이한 기질과 특성,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심리적-신체적 상황과 상태가 다르다. 같은 점이라면 모두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능력)이 있으며, 동시에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있다. 인간 자신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그 한계를 자각하는 일에 대한 일반적 탐구와 접근은 어느 정도 학습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자기완성이라는 이상추구는 고독한 길, 좁은 길일 수밖에 없다.

동물들은 새끼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 여건이 마련되면 미련 없이 내 보낸다.

사람처럼 옆에 두고 오래 함께 살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에 인간은 동물들과는 달리 독립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래오래 배워야 하는 그러한 시대는 지나갔다. 걸음마를 배웠으면 몸소 원리를 터득하고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익혀가는 일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진리의 길은 답습하며 따라가는 것이 아닌, 몸소 찾아가는 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