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한 아침

눈이 내리면 기분이 좋다.

뭔가 모르게 아직도 그리워지는 게 있나 보다. 첫 눈은 특히 애들 엄마와 각별한 추억이 있다. 그래서 첫 눈이 내리면 언제나 전화를 한다. 싸우거나 삐져서 기분이 편치 않을 때에도 전화를 한다. 내가 깜빡 잊고 못하면 전화가 바로 걸려 온다. “별 일 없어요?” “응... 무슨 일 있어?” “아뇨, 눈이 온다구요.” “아~ 그러네... 신나게 오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눈이 내리면, “오늘 운전 조심해야지.”로 일렁이는 감정의 순번이 바뀌었다.

오늘도 새벽에 수련장으로 나오는데 눈이 내린다.

눈이 밝지 않아서 비나 눈이 내리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평소보다 속도를 줄이고 조심 또 조심 차를 몰며 올림픽대로로 들어섰다. 눈발이 제법 신나게 날린다. 모발 폰을 꺼내어 애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새롭게 바꿔 마련해 준 휴대폰에 첫 전화를 할 겸 해서... 한참 만에 딸애가 받는다. “엄마 좀 바꿔줄래?” “네 아빠, 잠깐만요.” “왜요? 뭐 잊고 가셨어요?” “전화기 잘 들려? 음악 소리는 좀 어때?” “네.. 좋아요.” “그런데 눈이 많이 오네......” “나 지금 바빠요. 이놈의 강아지가 또 똥을 쌌어요. 똥 치워야 해요. 끊을게요.” “알았어...........”

무드 없는 마누라...

다시 속도를 늦추어서 차를 몰아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교를 지나 KBS 별관을 끼고 좌회전을 하는데 갑자기 왼쪽에서 봉고가 내 차 옆을 들이 받으며 도는 게 아닌가. 재빨리 옆으로 차를 틀면서 정지를 했다. 다행히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어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벌떡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나가려는데 감정이 잘 가라앉지 않는다. 접촉사고가 있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벌렁거린다. 사고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상대방과 다투어야 하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잘 못을 해 놓고서도 끝까지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려는 막무가내 식으로 나오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보면 쥐어 패주고 싶은 마음의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험회사에서 사람이 나와, 내 잘못이 아니라 해도 20% 과실을 부과한다.수련 시간은 다 돼가고 마냥 오리발 내밀며 큰소리치는 인간과 말다툼 해 봐야 결과는 뻔했다. “나는 속여도 스스로의 양심은 속일 수 없을 것이니, 작은 일로 양심 팔지 말라.”는 충고를 내뱉고 서둘러 수련장으로 왔다.

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손해만 보는 것인지.... 은근이 화가 난다.

우리 사회는 제 잘 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회인 듯싶다. 누가 봐도 자명한 실수를 해 놓고서도, “야, 경찰 불러, 경찰 부르라니까.... ” 경찰이 와서 잘 못을 일러 주는데도, “뭐 이런 경찰이 있어...” 하면서 과실을 인정치 않으려는 사람들.... 이럴 때마다 나는 열을 받는다. 아무렇게나 주차를 해놓고 튀는 사람들을 봐도 열불이 난다. 때로 무질서를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수련장 청소를 하고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들 뜬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수련할 때에는 온 세상을 품에 안듯이 느긋할 때가 있었건만 정작 여유를 가지고 우리들 세상살이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때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내 수련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그런 날... 씁쓸하고 찜찜한 그런 날이다.
대수롭지도 않는 일에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한 것은 분명 호흡의 끈이 짧은 탓이리...

무질서도 질서인 것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