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국선도 

이 세상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히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몸에서부터 그 속에 흐르는 피와 유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같이 물려받은 것들이다. 자연에서 얻어왔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조상으로 이어받아 다시 되돌려주고 물려주어야 할 것들이다. ‘나’, ‘내 것’, ‘내 몸’, ‘내 생각’, ‘내 감정’이란 ‘토란 잎 위의 이슬방울’처럼 흘러가는 강물에 합류되며 사라지는 작은 물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본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것에 집착을 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나를 내 세우고, 나를 위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에 신경을 쓰며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데 안간힘을 쓴다. 홀로 떠나는 것이 아쉽고 허망했던 옛날 사람들은 자신들의 분신일 수 있는 자손을 많이 남기는데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다. 그것으로 부족한 사람은 명예와 명성, 권력을 갖는데 또 다른 집착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는 이들은 산위에 있는 바위나 돌 위에 이름 석 자를 새기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였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안간힘 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런지도 모른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무수한 노동자와 기술자들이 만든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개인의 몫이 되었다. 남들이 피와 땀을 흘려 만든 성과물을 가져다가 조금 바꾸고 변형시켜 통째로 제 것처럼 둔갑시키는 일은 비단 중국인들만 구사하는 기술은 아닌 듯싶다. 이런 눈속임은 이제 우리 사회 도처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일이 되고 있다.   

“나는 신음하면서 구하는 자만을 시인할 수 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이 말은 신앙인뿐만이 아니라, 진실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시대는, 산고를 느끼지 못하고 아이를 낳는 여인들이나 피땀 흘리지 않고 재산을 물려받는 재벌 2세들처럼, 그리고 정당한 절차와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복사와 모방 천국의 시대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어느 것이 원본이고 복사본인지 조차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 할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국선도는 어떠한가?

나는 “국선도는 하나다.”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국선도에 여러 형용사가 많이 붙어 있어 얼핏 다양한 국선도가 있는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국선도는 청산선사님이 전해주신 오직 하나의 국선도가 있을 뿐이다. 국선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단체들마다 “국선도 본가”, “국선도 총 본원”이라는 등등의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을 쓰거나 그것도 부족해서 자신의 호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민주주의 앞에 형용사가 붙는 민주주의는 모두 사이비”라고 말한 네루의 질타를 염두에 두고 국선도 지도자들은 모두가 반성해 볼 일이 아닐까 싶다. “참기름” 앞에 형용사를 붙여 “진짜 참기름”이라고 선전하는 장사꾼들의 의식과 도를 닦는 이들 국선도 지도자들의 의식이 무엇이 다른지 나는 구별 할 수가 없다.

 청산선사님께서 국선도를 이 땅에 보급하신 지 40년이 되었다. 나는 청산선사님을 뵌 적이 없다. 그러나 국선도를 시작하고 난 한참 뒤에서야 한 차례 선사님을 뵌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선사님을 뵌 일이 대단해서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국선도는 청산이 전한 국선도 하나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1970 년대 초 어느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명함인쇄 업자들이 밀집해 있던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의 삼일로 길가 어느 비어 있는 상점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다 궁금해서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차력사들이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시범 보인 사람이 자신의 스승님을 모시고, 다시 그 스승은 자신의 스승을 모셔 시범을 보이는 식이었는데 갈수록 흥미진진하였다. 네 번째 차력사는 약간 대머리를 한 분으로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분은 신문지 절반을 말아서 맥주병을 격파하더니만 벽돌 한 장, 그 다음엔 두 장을 신문지 막대로 부수어버렸다. 기막힌 재주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여기가 끝인가 싶어서 가려고 하는데, 이분이 “저의 스승님을 소개하겠습니다.”고 말을 해서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대단한 고수가 등장을 할까? 하고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모두들 하얀 백발의 도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참 후에 등장한 사람은 좀 전에 시범을 보인 분보다 나이가 더 적어보이는 호리호리한 청년이 나타난 것이다. 이 분은 관람객들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바위 깨는 일과 통나무에 대못 박는 일, 그리고 계란 위에 나무 봉을 올려놓고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반 토막을 내는 놀랄만한 힘과 기술을 과시해 보였다.  

마지막에 등장한 분이 청산선사님인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 네 번째 등장한 분으로부터(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였음) 국선도를 배우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 분을 비난하거나 폄하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분 또한 국선도 보급을 위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많은 공헌을 한 분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어떠한 집단도 -그것이 종교집단이든 수련집단이든지- 창시자나 리더가 부재하게 되면 이러 저러한 이유로  쪼개져 분파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일례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개신교만 하더라도 한국 내에 300여개에 이르는 파가 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국선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본다면 문제 될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국선도는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어느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국선도는 우리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그 전통과 맥이 이어져 내려오다가 청산 선사님에 의해 세상에 공개 된 것이다. 청산은 자신이 배우고 전수 받은 내용을 글로 정리하고 말로 가르치면서 우리들에게 도맥을 전해주었다. 선사님은 단 한 번도 청산의 국선도라는 말을 사용하신 적이 없다. 하물며 그 아래서 지도를 받은 사람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어떠한 문화도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몇 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전(秘傳)으로 구전심수(口傳心授)하면서 전해져 내려온 선도법은 현묘지도(玄妙之道), 풍류도(風流徒), 단기법(丹氣法), 풍월도(風月道), 국선(國仙), 단도(丹道), 정각도(正覺道) 등등의 이름으로 전수되어 왔다. 그러므로 적어도 국선도는  어느 한 집단이나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선도의 정신과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는 수련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자세를 망각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혹한의 산중에서 아무런 문화적 혜택을 입지 못하면서 수도에 전념을 하며 창생구제를 위한 일념으로 국선도법을 수호하고 전하기 위해 애를 써온 수많은 열조를 생각해보라. 어찌 국선도 이름 앞에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름을 드러내고 기회만 있으면 리더를 부각시키려는 일들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국선도 지도자들은 뼈를 깎는 마음으로 반성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성하는 마음으로 ,모두 지도하는 일에서 은퇴하여 일반 수련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백의종군하는 태도로 국선도 보급에 앞장서기를 바라고 싶다. 그리하여 소리 없이 도법을 지키고 전수해 주시기 위해 피땀을 흘리신 수많은 열조 앞에 깊이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