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에세이 (제 5 호)

-국선도 여의도 수련원- 오륜빌딩 1004호

(2007년 8월 20일) (☎ 02-780-9004)

이 주의 주제 : 인사문화와 숨쉬기 문화

서양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지 않는다. 고개 숙이는 경우는 교회나 성당에서 신에게 기도를 드릴 때뿐이다. 서구인들과는 달리 동양인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고개 들고 얼굴을 보며 하는 인사와 머리 숙이며 하는 인사에는 커다란 문화적 차이가 있다. 과거 서구인들도 황제나 신분이 높은 귀족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사문화는 동양인들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마도 그들은 동양의 인사문화 속에서 평등의식의 부재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모른다.

서구인들은 폴리스적 개인의식의 씨앗을 오랜 세월, 숱한 투쟁과 혁명을 통한 피의 대가를 치루면서 발달시켜 왔다. 그 결과 개인은 독립된 인격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 개체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평등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민주정신은 그들의 인사문화에 잘 나타나 있다. 동양은 개인의식의 미발달로 인하여, 상하관계가 분명한 인사법이 비교적 오래 유지되어 왔다. 먼 옛날부터 군신간, 부자간, 주종간, 양반과 상놈간, 그리고 상사와 아랫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질서가 있었고, 이 질서에 상응하는 불평등한 인사문화가 있어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뒤늦게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동양사회에 민주화 바람이 불고, 서구적 개인의식에 서서히 물들게 됨으로서 동양의 인사법 또한 조금씩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

인사란 반갑고 기쁘게, 그리고 때로는 정중하게 만나는 사람에게 반가움이나 안부, 그리고 상대에게 예를 표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없이 하는 이 인사 속에는 실로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세포 하나, 피 한 방울, 작은 뼈 조각 하나에도 그 주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듯이 우리가 하는 인사 속에도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관이 바뀌어 질 수도 있는 일이다.

서양인들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인사는 얼핏 당당해 보여서 좋다. 그런데 이들의 인사문화에는 “나”라는 서구적 에고 의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이 에고의식이 그들 문화 속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발생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사회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자연의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그리고 인간의 소외현상을 야기 시킨 배후에는 이러한 서구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나”와 “내 것”, “내 나라, 내 민족”, “내 생활”, “인간중심주의”, “개발과 지배의식”이 “우리”와 “인류 공동체”, “생태계”, “공존의식”, “생태주의”, “자연주의”, “자연과 자연환경”에 우선하는 사고방식이다. 그 어느 시대보다도 우리 시대는 이념대립과 종교적 갈등, 패권 싸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지구촌 도처에서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그치지 않고 있다. 대립과 갈등, 투쟁이란 이렇게 나를 강하게 내세우고 상대를 무시할 때에 일어나는 파괴적 현상이다. “지배의식과 패권의식”은 강하나, “공존의식”이 약하다. 이 모두가 머리를 꼿꼿이 들고 숙일 줄 모르는, 오만한 “나”를 먼저 내세우며 개인의식을 발달시킨 서구 문화의 어두운 산물들이다.

동양인들이 하는 인사는 “절”이다. 머리를 조아리니 굴욕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특히 서구적 안목에서 본다면 더욱 더 그렇게 보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가 있어도, “절”에는 인격수양과 도야를 위한 마음가짐으로서의 “예(禮)”라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절”에는 자신(저)을 낮추고 마음을 비움으로써 겸허한 태도로서 “자신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고자” 하는(克己復禮), 구도자로서의 간절한 염원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내면의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동양인들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부족하여, 몸을 90도로 낮춰 내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기도 한다. 티베트에서는 아상(我相)을 없애기 위해 500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온 몸을 바닥에 대는(온몸 投地) 절을 하면서 일보일배(一步一拜)를 하면서 수년을 걸려 성지까지 가기도 한다. 황당하게 보일지 모르나, 이런 고행의 “절”속에는 나를 비우고자하는 사무친 구도의 정신이 깃들여있다. 

삼각산 도선사 입구엔 입차문내막존지혜(入此門內莫存知慧)라는 말씀이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이 문을 들어오는 사람은 모든 지식을 다 내려놓고 들어오라.” 마음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각자가 지닌 지식이니, 그것을 내려놓고 들어오라는 경구이다. 편견과 선입견이 비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공부는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절을 하는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뜻은 자신을 낮추고 다시 낮추어서 만병의 근원인 아집을 없애기 위함이다. 나이와 성별, 학벌과 지식, 권위와 지위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자신의 본성을 볼 수 있고, 겸손한 마음으로 수양을 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무아”, “나를 없애야 한다.”라는 말을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쉽게 이해를 하지 못 한다. “나”라는 실체를 중심으로 서양문화가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에고”를 중요시 여기는 문화이기 때문에 그들은 물질문명을 발달시켰고, 동양은 “나”를 죽이는 수양에 역점을 두었기에 내면을 발전시킨 정신문화가 발달된 것이다.

그런데 이 내면의 정신문화는 숨쉬기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요가와 불교, 그리고 중국의 도가는 물론, 유가에 있어서도 조차 숨쉬기는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숨쉬기 문화에 있어서 “절”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숨쉬기 문화는 내면의 정신문화를 말한다. 숨은 생명이며, 정신이고, 영혼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태어나셨다. 성령이란 성스러운 ‘바람’, 또는 ‘숨’이다. 주기도문의 이 부분 원문을 직역하면 “성스러운 바람이 [성모마리아의] 자궁에 들어가서”(en gastri exhousa ek pneumatos tou agiou) 이 세상에 태어 나셨다. 인간의 내면- 심리, 정신, 영혼(psyche), 혼백-과 관련된 용어들이 모두 어원적으로 “바람”, “숨”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숨의 상태를 보고 우리는 심신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숨이 고르고 안정되어 있으면 정신 또한 편안한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정신이 편하면 육체는 따라서 건강하다. 육체와 정신, 심리적 상태와 건강상태, 호흡의 상태와 정신 상태는 모두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여기에서 인사의 태도와 방식이 호흡에 끼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에고(ego) 의식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면의 세계에 깊게 들어갈 수 없다. 강한 “에고의식”은 언제나 감각지각의 현상세계에 마음이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다한 세상일들에 대한 상념이 많고 걱정을 짊어지고 다닌다. 눈앞에 나타난 분명한 사실만을 좋아하며,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편견이나 선입견이 많다. 에고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수반되는 아상(我相)과 아집이 있다. 이것들 때문에 인간의 심리는 언제나 충돌하며 뒤집혀지고 엎어지고 속이 뒤틀리게 된다. 거친 호흡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나”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은 동양인들은 그러한 자신을 낮추고 죽임으로써 진정한 “나”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절”은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호흡은 스스로를 낮추고 내릴수록 더 깊어지고 안정이 된다. “나”라는 의식이 약화되면 될 수록 숨은 더욱 차분해지고 깊은 내면의 정신세계로 침잠해 들어갈 수가 있다. 이러한 깊은 내면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삼함(三緘 : 몸, 입, 생각을 닫는 일)을 하며, 방하(放下 :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 일)를 한다. 그래서 숨쉬기를 할 때에는 눈을 반개하거나 지긋하게 감고 외부 감각을 차단하여 생각이 밖에 머무르지 않도록 애를 쓴다.

마음의 안정과 평화는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이성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다. 심신의 안정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힘(아집)에 반비례하며, 자신을 낮추는 일에 비례한다. 자신을 낮추게 되면 호흡이 가슴 부위에서 단전 쪽으로 내려온다. 그러므로 어떠한 마음 자세를 지니느냐에 따라 정신적 심리상태와 건강 상태가 좌우된다. 저마다 갖게 되는 호흡의 중심은 결국 각자의 가치관, 사고방식, 성격, 그리고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스트레스에 따라 결정이 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의 인사문화는 국선도 숨쉬기 문화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인사는 심신의 건강과 정신수양하기 위한 바른 마음가짐을 지니기 위한 인사문화로서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현대사회가 이익사회로 변화되면서 저마다 개인이나 집단 모두가 한결 같이 이익창출을 위한 경쟁력 강화 방안 모색에 마음을 쓰고 있다. 경쟁이란 철저하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보이지 않는 치열한 생존을 건 투쟁이다. 공존은 공허한 슬로건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투쟁은 내가 살고 네가 죽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개인의식을 강조하는 서구적 사고에 동화되면서부터 우리의 정신건강이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인사문화와 국선도 숨쉬기 문화에 내재된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새롭게 건강한 심신을 가꾸고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