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공 수련을 마치고



아직도‘외공’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낯설다.

그런데 그 수련을 또 다녀왔다. 이 나이에 싸움할 일 없고, 누군가에게 잘 보일도 없건만, 무엇에 홀린 것인지 수련장 문까지 닫고 4박 5일간 외공 수련을 마쳤다. 다소 피곤했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빨갛게 구워진 코, 까맣게 타버린 얼굴~ 검은 베레모만 쓰면 나도 영락없는 총각, 한 번 더 휘젓고 돌아다닐 수도 있는 총각이다.

외공’에 대한 나의 인식은 청산 선사님 말씀처럼, 내공이 완성되고 마음만 먹으면 1 주일 내에 마스터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래서 무술을 익히는 외공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철 지난 운동쯤으로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치고받고 부수며 싸우는 무술-외공”은 내공 수련에 비해 다소 품격이 떨어지는 수련이 아닌가 싶었다. 외공은 옛날 장터에 나가면 돌을 깨부수고 대못을 나무에 박고 빼는 차력과 같은 운동으로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 걸맞지 않는 운동이었다. 국선도 수련을 해 오는 동안 나는 “내공 수련만 열심히 하면 ‘만사형통’이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외공을 도외시 한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외공을 하는 이들을 보면 어쩐지 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이 없던 시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감! 따분하게...

그런데 작년 여름, 외공 수련을 한 번 다녀오고서부터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게 생각이 부족했던 점은 “내 수련을 내공수련”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내가 하는 수련은 건강 유지 차원의 운동이었을 뿐, 내공이나 외공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것이 아니었다. 청산선사님이 말씀하신 “내공 수련”은 나와 같은 수준의 수련이 아니라, 수도(修道)적 차원의 내공을 의미한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도를 구하는 구도정신의 수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공수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몸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는 것은 수련의 전제가 된다. 다시 말해서 기본적인 외공 수련이 내공 수련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맛보기 내공 수련”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아직 제대로 수련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부실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기초는 발과 발목을 포함한 하체단련과 심폐기능의 확장, 그리고 근력과 지구력, 순발력 등이다. 하체 또는 심폐기능이 탁월한 경우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기초 체력과 근골에 문제가 있다. 강인한 체력은 하체가 뒷받침해 줄 때에 가능하며, 부실한 하체를 가지고 단전호흡을 시작하는 것 보다는 외공 수련을 통한 하체를 강화시켜 나가면서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싶다.

외공의 또 다른 긍정적 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타고난 공격성을 외공수련을 통해 승화시키는 일이다. ‘인생은 싸우기 때문에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투쟁이 없는 곳에 인생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투쟁은 소아(小我)적 삶의 본질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싸움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파괴적 본능, 내가 살고 네가 죽어야 하는 생존법칙이 상호공존(symbios)의 원리로 대체되기 위해서는 투쟁의 본능이 승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스포츠의 긍정적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외공은 핏속에 흐르는 투쟁의 소아적 본능을 밖으로 드러내어 의식화시키고 승화시킴으로서 대아의 존재로 자신을 고양시키는 고도의 수련이다.

사람들이 왜 피터지게 싸우는 권투나, K1과 같은 경기를 보며 환호하고 패를 나누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열광하며 즐거워하는 것일까? 대립적 관계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승화를 위한 투쟁, 외공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거나 없어져야 할 악으로 간주하는 생존 경쟁적 투쟁은 아름답지도 않으며, 정당화 되지도 않는다.

4박 5일의 수련기간은 내게 고된 훈련이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한 때나마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고, 해묵은 감정들을 씻어내었다. 공격하면서 씻어내고 칼로 내려치면서 억눌린 기운을 분출시킬 수 있었다. 비록 목검이었으나 사선으로 상대의 어깨와 머리를 베고 내려치면서 소극적인 생각과 소심한 성격을 날려버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자신과 맞붙는 싸움이지만 싸움의 기본에 익숙해 있지 못했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다. 발을 놓는 기초 보법, 타격하는 손동작, 발동작 등 모든 외공의 기본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수련은 이러한 외공의 기본과 동작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보다 실감하면서 배울 수 있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작년에 배운 원화법, 화중법, 오공법, 보운검 3세 등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배우는 일도 힘이 들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밤 9시 넘게까지 하루 온종일을 허우적거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팔상법, 팔형법, 보정법 3세 중 1세까지 포함을 시켜 배우는 바람에 중도 포기를 하려고까지 했었다. 밤에도 줄곧 숙면을 취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수련을 지도해 주시는 법사님과 사범님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를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힘들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다가도, 배우는 수련생들 보다 더 열심히 두 세배 열심히 시범을 보이며 무언가 전해주고 가르치고자 하는 그 진실한 열망을 느낄 때에는 마치 그 열의에 배신을 하고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몸뚱이는 종이니 마음이 부려야 한다.”는 청산선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조금만 힘들면 몸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고 소심하게 몸뚱이 아끼고 보호하느라 애를 썼었다. 그러나 막상 몸을 부리다 보니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 같았다. 축구를 할 때에도 심장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아 골키퍼를 자처했다. 그런데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골을 세 꼴이나 먹고 나니 미안해서 더 꼴문을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씩 뛰기 시작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많이 뛰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수련이 끝나는 하루 전 날, 팔상법과 보정검 1세를 배웠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국선도 대학 학생 도우님들의 도움을 받아 저녁 먹고 노래방을 다녀온 다음 밤 10시부터 복습을 하며 배웠다. 밤 2시 반까지 마스터 하고 강당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아침에 수련 테스트를 하는데 그렇게 쉬운 동작들이 생각이 나질 않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안정되어 있었다. 피곤하였지만 후련하였고 차분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4박 5일 성심으로 수련 지도를 해 주신 진목법사님과 두 분 지도 사범님, 그리고 국선도 대학 학생도우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