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 주고 벌어서 남 주자!

나는 솔직히 배우고 벌어서 남 줄 자신이 없다.

배웠으니 잘 난 체 좀 더 하고 싶고, 돈 벌어서 좋은 차와 집도 사서 집 없는 서러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애들에게도 좀 주고, 돈벼락 한 번 맞고 죽고 싶다는 애들 엄마 소원도 풀어주고, 숨 거둘 때까지 돈 걱정 않고 살고 싶다. 그런데 돈 버는 재주가 없어서 종종 복권을 사곤 한다. 하지만 이것도 신통치 않다. 1주일이나마 내게 꿈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만족하며 돈 생각이 나면 또 산다. 어떻든 나는 겉으로 수련하는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속물성이 강한 사이비 수련인이다.

얼마 전 TV에 침~사랑, 뜸~사랑 할아버지 김남수 옹의 인상 깊은 침․뜸 강연이 있었다. 

듣고 배운 바가 많았다. 귀에 익숙한 혈 자리에 뜸을 놓으면 장수해서 자신의 계획처럼 120살에 새장가 들 수 있다고 해서 귀가 쫑긋했다. 그런데 그 보다도 멋이 있던던 것은 침이나 뜸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분의 한의원에 적혀져 있다는 한 마디 뜸 사랑 훈(訓)이었다.

“배워서 남 주자.”

일주일에 하루는 돈 벌고 나머지 날들은 봉사하러 돌아다니는 아흔 넷 할아버지. 남들 같으면 누워서 대소변 받게 할 연세가 아닌가! 그 연세에 활력 넘치게 활동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라는 작은 의문이 생겼다. 120살에 장가까지 가겠다고 큰소리치는 이 할아버지.... 좀 죄송스러운 표현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쩌면 저 할아버지가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늘사람이 어디 따로 있던가? 내게는  “밝”의 화신으로 느껴졌다.

나는 부끄럽게 천사 할아버지와는 달라서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쓰레기 통 하나만 비워도 꼭 “쓰레기통 내가 비웠어.”라고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졸부다. 좀 과장되긴 했지만 어떻든 생색내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나”라는 생각에 많이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버리지 못해 아집이 강하게 남아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별볼일 없는 "나"를 버리는 수련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그런데 언젠가 생활강사 시험을 보기 위해 늘그막에 시험공부를 하면서 크게 깨우친 바가 있다.
생활강사, 수사, 사범 과정을 밟을 때 마다 시험을 보는데, 비록 미리 모두 다 가르쳐 주는 문제지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의 답을 따분하게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들 문제 가운데 "국선도 수도를 하는 마음 자세"에 관한 문제가 나오는데 그 답이 머리에 뜻도 잘 들어오지 않고 내용도 따분해서 외우기가 싫었다. 그 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대효지심(大孝之心)을 가져야 한다.
 2) 대욕지심 (大慾之心), 공욕지심 (公慾之心)을 가져야 한다.
 3) 도인도송 (導引道頌 ) 하여야 한다.
 4) 심신(心身)의 수도(修道)를 한다.
 5) 대자연 또는 우주의 힘에 참여하여야 된다는 원리를 믿어야 한다.
 6) 국선도는 체득(體得)으로 성립된 것이다.

어떻든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 것이기에 외우기는 하였으나, 속으로는 냉소적인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라.... 저래라..... 믿어라.... 말아라.” 국선도가 종교도 아닌데 무얼 믿으라는 등, 그리고 초등학생에게 하는 것처럼 “불조심 합시다.” “차 탈 때에는 줄을 섭시다.”와 같은 구호를 외우게 하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구호문화의 의식빈곤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 마음에 제일 들지 않은 부분은 “대욕지심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집 강하고 욕심 많은 사람에게 큰욕심 가지라고 해서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했다. 본래무일물이거늘 무슨 큰 욕심을 가지라는 것인가! 그 때까지만 해도 국선도를 좀 아래로 깔고 내려다보는 오만함이 내게 보이지 않게 있었다. 오만한 끼가 있게 되면 모든 사물과 말들이 제대로 보이는 법이 없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나’를 없애려고만 했지 ‘나’를 인정하고 그 ‘나의 외연’을 넓힐 생각을 크게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에만 신경을 써 온 나였다. 모든 것이 공한 것을 알고 깨달음을 얻고자 했지만 나는 깨우침을 얻지 못 하였다. 그런데 밝돌법 수련은 불교와 달리 “하지 말라.”라든가, “무아”, “무심”, 공(空) 등을 강조하는 쪽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키워 더 크게 만들어 우주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때까지 자아를 확대 고양시키는 긍정적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나는 이 두 입장 중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렸나를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道)에 이르는 접근법에 큰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밝”사상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작은 나에서 큰 나로, 좁은 곳에서 광대무변한 대자연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수련법이다. 그러므로 대욕지심은 욕심을 가질 바에는 큰 욕심, 스스로를 작은 나 속에 가두지 말고 물아일여, 개전일체의 경지까지 외연을 넓혀서 큰 나를 만들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빌린 것이며 하나같이 남으로부터 얻은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내가 배운 것,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얻은 것, 내것이 아니니 그것이 배운 것이든 스스로 번 것이든지 잠시 빌려 가지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에게 아낌 없이 줌으로써 빚을 갚고 나와 네가 우리가 되어 대욕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남수 할아버지는 대욕지인이다.

그는 남을 도우면서 생명의 활기를 얻고 120살에 장가를 가고자 하는 열심히 살아가는 욕심쟁이이다. 그러나 이 욕심꾼은 자신의 욕심을 끝 없이 넓힘으로써 남과 나의 경계까지를 허물어버린 사람, 자타일여의 정신을 구연한 대욕지심의 큰 사람임이 틀림 없어 보인다.

우리 모두 배워서 남 주고 벌어서 남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