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광!
방에서 놀고 있다가 소리를 듣고 황급히 마루로 나가보았다. 며칠 전 새로 구입한 밥상의 모서리를 톡~톡~톡~ 손수 고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밥상 한 가운데를 망치로 내리쳐 한 방에 부수어 버리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손재주가 별로 없으셨던 우리 아버지. 망치를 드셨다 싶으면 언제나 피를 보곤 하셨다. 그 날도 새 밥상을 고치기 위해 망치를 드셨다가 뭐가 뜻대로 안되었던지 통째로 한 방에 날려버리셨다.
나는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손재주가 많아 무엇이나 잘 고치고 만든다. 가끔 피를 보긴 하지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국선도를 통해서 내가 우리 아버지를 꼭 빼닮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요즘 내겐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87년에 시작한 국선도 수련을 꾸준히 계속하지 못한 점이다. “왜 이 좋은 수련을 바보처럼 하다말다를 반복했을까?” 계속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나 수련장이 집에서 좀 멀었고.... 강의시간을 많이 맡았고... 연구논문 쓰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또 보직을 맡게 되어 여념이 없었으며.... 등등 여러 가지 원인을 나름대로 나열해 보았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은 내 자신을 합리화한 변명에 불과했다. 최근에 깨닫게 된 숨겨진 이유는 “수련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 스스로가 지운 것이었다. 건강을 위해 수련을 시작을 했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나 부지불식간에 애초에 없었던 숨 가쁜 수련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때마다 수련이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저 동작을 나도 따라서 할 수 있을까? 승단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수련 전과 비교해볼 때 건강이 많이 좋아졌음에도 그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욕심이 수련에서 오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기에 차츰 수련시간만 되면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긴장을 푸는 수련이 아니라, 바짝 긴장하는 수련이 되고 말았다. 호흡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결국 누적된 긴장을 더 견디기 힘들 때가 되면 나는 아버지가 상을 빠개듯이, 결국 망치를 뽑아 들고 미련 없이 국선도를 산산조각을 내고 나왔다. 집에서 혼자 하면 되겠지 하며 그만 두었지만, “나 홀로” 수련은 일주일을 넘기지를 못했다.
얼마 전 법사님이 나에게 요즘 수련 잘 되가느냐? 고 물으신 적이 있다.
그래서 지금 매고 있는 노란 띠도 내겐 무겁다는 대답을 했더니, “욕심도 많으시네... 전보다 많이 좋아졌구먼.” 내 딴에는 솔직하고 겸손하게 대답을 한 것인데 예상치 않은 대꾸를 법사님으로부터 듣게 된 것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맞아요. 하긴 그러네요.”라고 시인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내 겸손에는 보이지 않는 욕심과 오만이 잔뜩 숨겨져 있었다.
얼핏 겸손한 표현 같지만 내심으로는 “나는 지금 이 상태를 조금도 만족하지 않고 있다.” 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지도를 해 준 분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내 대답은 결코 공손한 답변이 아니었다. 애써 지도를 해서 이만큼 좋아진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정작 본인은 변화된 모습은 외면하고 “이것 가지고는 아직 멀었습니다.”는 대꾸를 한 셈이었다.
수련은 변화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즐기면서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도를 해 주는 분의 손길을 피부로, 호흡으로 마음으로 함께 감지하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교감이 없거나 무언가 엇박자를 느끼게 된다면 수련은 의무적으로 하는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는 식사를 잘 드시면서도 식사 시간마다 두고 쓰시는 말이 있다. “밥 생각이 없으나, 의무적으로 먹는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엄마, 이제는 의무적으로라도 맛있게 먹는다. 라고 해 보세요.” 라고 말씀을 드리면, “오냐, 너나 맛있게 먹어라.”는 대꾸로 응수가 간단히 끝난다.
의무적으로 하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수련원에 붙어 있는 국선도 포스터에는 국선도 대학에 다니는 주인공의 멋진 건곤의 유법동작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곤 했다. 얼마나 수련을 했으면 이렇게 될까? 이 동작을 하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보기만 해도 부담되는 사진이었다. 그런데 당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가 8시간을 쉬는 시간도 없이 한 동작을 한 시간씩 하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 숨이 막혀 기절할 뻔하였다. “그런데 있잖아요. 저는 수련을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해요. 안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견뎌 내나요? 재미를 붙이니깐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죠.”
모델 도우님의 말처럼 무슨 일이든 재미를 붙이면, 놀이처럼 흥을 잃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수련시간이 재미없이 건강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날품을 팔기 위해 땅을 파는 노동과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니 오래 견디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련은 모름지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명나고 진지하게 펼지는 한마당 놀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수련은 완성을 향한 몸짓이 아니라, 미완의 상태를 차분히 바라보며 음미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수련이라면 더욱 더 멋있고 재미있을 것 같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 교향곡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미완성이란 것도 자세히 보면 욕심 많은 인간에게나 미완성이지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언제나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완전한 것이 아닐까 싶다.
